Madam C / 손이숙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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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rt 댓글 0건 조회 5,542회 작성일 09-04-08 20:12
전시기간 ~
전시장소명
관련링크 http://www.yisooksohn.com/ 1437회 연결

Madam C

손이숙展 / SOHONYISOOK / 孫以淑 / photography

2009_0408 ▶ 2009_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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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숙_Five to Twelve_100×100cm_2009


초대일시_2009_040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김진혜 갤러리_Kim.jinhye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2,3층
Tel. +82.2.725.6751
www.kimjinhyegallery.com



Model House에 대한 단상-여성, 공간, 존재 

손이숙의 시선은 중류층 이상의 여성과 그녀들이 주조해 낸 실내공간을 응시한다. 작가가 응시하는 이 공간은 우리들의 일상이 실현되는 장소로, 전형적인 여성의 기호품들로 가득 채워진 채 지루할 정도로 안정된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안정성은 단순히 구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어떤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진 속 여성들과 어우러져 있는 식탁과 화장대, 거울과 조명기구 그리고 전면 통유리는 하나의 오브제라기보다는 그녀들의 확장이자 그녀들의 몸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기능하면서 친숙한 생활공간을 전시해낸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의 시선이 파고드는 이 일상공간은 지독한 낯섦이 감지되는 낯선 이계(異界)이기도 하다. 이곳이 일상적 삶의 체취가 휘발되어 버린 일종의 전시된 공간이라는 느낌은, 마치 모조공간인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 들어섰을 때 우리가 받게 되는 인상과 유사하다. 우리는 모델하우스에 들어서는 순간 두 가지 감정의 묘한 엇갈린 마주침을 경험하게 된다. 생경하게 다가오는 장식들에 대한 순간적 매혹과 이질적인 낯섦으로 인한 이물감. 모델하우스에서 우리를 엄습하는 이 상충하는 감정이야말로 작가의 시선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며, 모델하우스 속의 삶에 깊이 패여 있는 간극을 파고 들어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심연을 감지하려는 사진적 전략이 개입하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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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숙_Flower Interior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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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숙_Morning Makeup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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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숙_Wine and Sup_잉크젯 프린트_100×100cm_2007


손이숙은 프레임 안에 천국보다 낯선 무중력의 일상공간을 배치시킨다. 이 공간은 잘 꾸며진 안락과 행복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지상에 건설한 천국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공간은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된 그녀만의 밀폐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현실과는 단절되어 있는 고립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느낌은 인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진 속 여성들의 시선은 중상류층의 허위의식이나 자기과시 욕망, 물화된 욕망 혹은 중년여성의 존재의 상실감을 머금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은 매혹적이라 할 수 있는 그녀들의 공간 안에서 자신들을 최대한 공간화 함으로써 스스로를 지워내고 있다. 손이숙의 사진 속 여성은 인물로서 기억되기를 거부하고 공간으로 환원될 뿐이다. 지독한 일상의 비일상화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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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숙_Twin Lamps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06


작가의 시선이 파고들고자 하는 곳은 바로 이 일상의 비일상화가 발생하는 ‘틈’인 듯하다. 사진 속 여성들은 시간적 존재감을 최소화하고 황홀경과 무기력을 동시에 은유하는 역설(逆說)을 공간 속에서 지향한다. 그녀들은 말 그대로 人間이기보다는 人物로서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과 하나가 된다. 인물이 입고 있는 의상은 실내공간의 벽지나 가구 혹은 장식물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디자인과 색감을 보여주며 마침내 동일한 질감에 도달하곤 한다. 인간적 존재감의 제로지대로 향하는 이 인물들에게서 거세되어 버린 구체적인 시간은 공간 속에 포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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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숙_Nobody but You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06


그렇다면 이 무시간성 혹은 탈시간성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작가가 담아내고 있는 그녀들은 윤리적 지평이나 사회적 지평 안에 존재하는 악녀 이미지나 착한여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있다. 그녀들은 자신이 존재하는 바로 그 공간에 자신을 가장 적절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스스로 모델을 자처한다. 이때 모델화는 그녀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사진적 전략이다.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물화되어 버린 여성의 삶, 연물주의(戀物主義)에 빠진 여성들에 대한 비판 등의 식상한 논리와 결별한다. 이 공간 속의 인물들은 어딘가 낯선 이계(異界)에 있는 존재들처럼 우리를 혹은 자신을 응시한다. 그녀들의 시선은 나르시소스처럼 자기도취에 빠진 눈빛이기도 하면서 또한 동시에 한정된 공간 속에 갇힌 굳어버린 평화를 직시한다. 이 균열이야말로 사회문화적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도 옮겨 놓는데, 작가는 그녀들이 가졌던 무수한 사회문화적 욕망을 주시하기보다는, 모든 욕망을 통과한 후에 남는 그 무엇, 풍요의 극점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으려는 욕망을 카메라로 엿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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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숙_Sister Queen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09


이런 점에서 손이숙의 작업은 존재의 본질로 향하는 화두를 더듬고 있다. 그것은 이 세계의 틈을 극대화 하는 방식으로, 욕망 이전의 존재성에 대한 희미한 흔적을 발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무모하지만, 무모하기에 진정성을 간직한 순결한 시선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세계를 본다는 것은, 우리들의 욕망이 보이지 않는 그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한사코 자신의 욕망을 담담히 건너가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 이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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